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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 2009] 1부 1장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역사적 형성과정 매듭 의료민영화 자료집

[매듭2009] 1부 1장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역사적 형성과정

한국에서 과학적 의료를 기반으로 하는 의료체계는 일제시기에 형성되었습니다. 일제는 식민지 통치정책의 일환으로 국가주도 보건의료체계를 만들었습니다. 보건의료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각 도에 1개소의 도립병원을 설립하고, 일제 말까지 60여개의 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이 당시 방역보건은 경찰에 속해 있었는데, 이는 국가보건행정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해방 이후 한국 보건의료체계는 의료에 대한 국가의 관심이 급격히 후퇴한다는 점과 미국의학과 미국의료제도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형태로 변화의 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해방 후 현재까지 의료체계의 변화에 따라 여러 시기로 나눠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1기 : 위생방역의 시기(1945-1961)

이 시기 의료제공체계와 보건의료제도는 거의 방치되었으나 의학 및 의료기술에 있어서는 상당한 발전이 있었습니다. 의료부문에 대한 국가의 관심 부족은 원조에 의존하는 빈약한 재정 조건 하에서 의료에까지 관심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는 데 일차적으로 기인했습니다. 한편 국가형성의 과정에서 국가와 지배계급은 민중들의 사회개혁 요구를 배제하는데 일단 성공함으로써 의료나 사회보장의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게 된 측면도 있습니다. 이러한 국가의 의료부분에 대한 관심의 축소는 미국식 보건행정체계를 도입함으로써 보다 체계화됩니다. 즉 국가는 공중보건업무만을 주로 담당하고 의료서비스는 민간부분에서 담당하는 자유방임적 분업구조를 추구하면서 국가는 더 이상 의료의 주요 생산자가 아니게 됩니다.

경제의 피폐와 자원의 빈곤으로 가난한 다수의 민중들은 보건진료소에서 극히 제한된 구호 차원의 보건의료서비스만을 제공받게 되고, 자유경쟁시장에 맡겨진 의료부문은 일부의 부유한 자들에게만 이용 가능한 것이어서 미국식 의료제도의 차별현상이 극심하였습니다. 이 시기 중앙정부예산에서 보건의료비지출 비율은 1%전후로 세계최저수준이었으며 이는 민중의 건강권을 거의 전적으로 개인적 책임으로만 전가시킨 것입니다.

 

제2기 : 보건의료기반 구축 및 경제개발의 시기(1961-1977)

1961년을 기점으로 보건의료의 법체계가 정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근대적인 보건의료를 염두에 둔 법체계의 정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현실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경제개발이 최우선의 과제였으며, 경제적 논리와 배치되는 성격이 강한 보건의료는 투자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시기 보건의료자원분야의 주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시, 도립병원은 지역의료센터로서의 권위와 영광을 잃게 되었고, 대신 사립병원이 이후 병원부분의 발전을 주도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둘째, 병원이 의료체계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축소된 대신 개인의원이 의료서비스 공급의 주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다수의 의사들이 대우가 열악한 병원근무를 회피하고 개인소유의 진료소를 선호하였기 때문입니다.

 

제3기 : 의료보장 및 보건사회개발의 시기(1977-1989)

법정의료보험이 구축된 시기입니다. 1977년 대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우선 시행하였으며 1989년에는 12년 만에 전국민의료보험을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의료보험실시로 국민의 호의적 반응을 얻은 정부는 의료보험이 단기간에 확대될 것을 대비해 의료자원을 확충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1980년대부터 의과대학 신설이 급증하였습니다. 1980년 초부터는 정부가 민간의료시설에도 재원을 투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재정을 본격적으로 투입하기보다는 차관과 금융지원에 주로 의존하였습니다. 아울러 의사가 아닌 사람도 병원을 건립할 수 있도록 주로 의료법인에 융자하여 병원을 건립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책으로 지방에 67개 병원이 신설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병원 건립 추진계획은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수개의 병원은 초창기에 실패하고, 나머지병원들도 인력, 자금, 수요부족의 3중고를 제대로 이기지 못하여 본래의 취지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그 당시 병원을 건립하여 굴지의 대학병원으로 발돋움한 병원도 있으나, 이는 주로 대도시 또는 대도시 인근에 건립된 병원이었습니다.

이 시기 보건의료체계의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이전 시기부터 주도적으로 성장해오던 개인의원들의 성장세는 계속되었으나 내용적으로는 위기상황을 맞이한 것이고, 병원, 특히 민간병원 중심으로 헤게모니 이전이 사실상 완료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의료보장의 실시와 소득증가로 입원수요가 폭증한 것과 정부의 병상 신축 및 증설 장려와 지원 등에 기인합니다. 그러면서도 병원은 이전과 같이 외래환자에 대한 점유도 지속적으로 강화하였습니다. 종합병원의 외래의료 점유는 의료보장이 확대되어 갈수록 그 정도를 더해갔으며, 1979년 외래진료일수의 9.5%만을 차지하던 종합병원이 1984년에는 31.3%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이 시기에 의료전달체계의 왜곡은 구조적으로 굳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제4기 :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적 왜곡의 심화 (1989-1997)

보건의료 부분에서 민간부분이 급격하게 성장하였던 것은 정부가 자유방임적 공급정책을 구사함과 동시에 보건의료시장의 제반여건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1989년 현대아산병원이 설립되고 1994년 삼성의료원이 설립되면서 한국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는 더 심화됩니다. 3차 의료기관 간의 병상 수 증가와 고가장비 구입 경쟁이 격화되고, 이 과정에서 대형병원들은 외래환자들에 대한 고가진료와 서비스 과잉 제공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합니다. 정부는 이를 규제하기는커녕 1990년 진료권역별 병상수 상한제 폐지와 병상 신증설 절차 완화, 1998년 진료권역 폐지 등 이를 부추기는 정책으로 사태를 악화시켰습니다. 이에따라 의료비는 증가하게 되었고 의료전달체계는 와해되었으며, 의료 시설의 지역적 불평등은 심화되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큰 민간부분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부의 민영화와 시장주의 정책에 힘입은 보건의료 민간부분의 성장과 투자확대는 결국 보건의료시장에서의 이윤성에 근거한 것입니다. 보건의료시장에서 이윤획득의 가능성이 높고 투자의 불확실성이 낮은 까닭에, 적극적인 이윤추구자인 여러 재벌기업이 병원산업에 진출하여 시장을 점유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OECD 선진국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한국 특유의 현상입니다.


제5기 : 보건의료체계의 신자유주의화(1997-현재)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보건의료체계는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시작합니다. 의료보험재정통합과 의약분업이 그 예입니다.
1988년 농민들의 보험료 납부 거부 투쟁에서 출발한 의료보험통합추진운동은 지역보험과 직장보험으로 나뉘어져있던 당시 보험체계에서 지역보험의 재정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 하에서 일어났습니다. 도시노동자를 기반으로 상대적으로 재정이 여유로운 직장보험이 지역보험과 통합된다면 지역보험 가입자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한편 보험 운영비를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통합과정에서 지역보험 가입자 보험료의 50%를 국고로 지원하고, 심사평가제도를 통해 공급체계 통제 기제도 확보하며, 건강보험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예방 및 건강증진 사업에도 기금을 활용하기로 하는 등 운동진영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공기업의 효율성, 국고 부담의 감소를 개혁 근거로 내세우며 의료보험통합을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용도로 활용하였습니다. 게다가 여전히 공급체계는 민간 중심적이었으므로 병원은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대형화 고급화하는 전략을 택하였습니다. 이러한 추세를 재벌 병원들이 주도하면서 의료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하였습니다.

한편, 의약분업을 추진한 근거는 약물 오남용 감소를 통한 국민 건강 증진과 약물 사용감소를 통한 약제비 절감이었습니다. 당시에 주로 비판받은 문제는 제약회사의 음성적 약가마진과 이를 분배하기 위해 의사, 약사에게 주는 리베이트였습니다. 하지만 의약분업은 결과적으로 약품 남용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초국적 제약기업들에게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실제로 초국적 제약기업들은 적극적인 로비와 압력을 행사하면서 의약품 관련 정책에 개입했습니다. 의약분업도 그러한 요구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고가 수입의약품의 보험 등재를 요구했고 선진국 수준의 약가기준을 요구하는 A-7 가격결정제를 도입시켜 폭리에 가까운 약가를 관철시켰습니다. 한편 비공식적 수입인 리베이트가 줄어든 만큼 의약계의 수입보전을 위해 수가가 인상되었습니다. 이렇듯 의약분업의 결과는 초국적 제약기업의 비약적 성장과 건강보험 재정의 악화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재정 부담과 공급체계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영리병원 도입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라는 신자유주의적 대책이 노무현 참여정부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니 이명박 정부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는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지난 10년 간 진행되어온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완결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건강한 세상, 더 큰 연대를 위한 보건의료학생 매듭, 의료민영화 대응 자료집 2009
1부 한국보건의료체계의 역사와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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